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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현금과 가상화폐 대체를 위한 인도의 디지털화폐 시범사업

인도 Debashis Acharya School of Economics, University of Hyderabad Professor 2023/04/11

You may download English ver. of the original article(unedited) on top.

1. 서론
인도 중앙은행(RBI, Reserve Bank of India)은 자국 공식 화폐인 루피(INR) 이외에도 최근 도매와 소매 부문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새로 도입하는 시범사업을 개시했다. 일반적으로 화폐는 특정국의 중앙은행이나 국가 기관이 발행한 증권의 일종으로, 지금까지는 종이나 폴리머 재질로 만들어지는 불환지폐가 법정통화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CBDC란 정확히 무엇인가? 스리 라비 산카르(Sri Rabi Sankar) RBI 부총재의 정의를 차용하자면 CBDC는 중앙은행이 디지털 형태로 발행하는 법정통화로, 불환지폐와 형태만 다를 뿐 동등한 가치를 지니기에 1대1 교환이 가능하다(Sankar, 2021).

인도는 2022년 11월 1일 도매(wholesale) 부문의 CBDC 시범사업으로 도매용 디지털 루피(e₹-W, 이하 ‘도매용 e-루피’)를 발행했는데, 현재 도매용 e-루피는 국공채 유통시장(secondary market) 결제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앞으로 사용처가 확대되면 은행 간 거래의 효율성 증대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2022년 12월 1일부터 발행된 소매(retail) 부문용 디지털 루피(e₹-R, 이하 ‘소매용 e-루피’)는 아직 일부 소비자와 상인으로 구성된 제한적 그룹 내에서만 사용된다. 현재 진행 중인 CBDC 시범사업 제1기의 참여 대상으로는 총 4개의 은행1)이 선정되었고, 향후 제2기에는 여기에 4개의 은행2)이 새로 추가되는 등 사업 규모가 근미래에 더욱 확대될 예정이다. 산카르 RBI 부총재가 2023년 2월 8일에 열린 통화정책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소매용 e-루피 시범사업에는 5만 명의 소비자와 5,000명의 상인이 참여 중이고, 누적 결제건수는 77만 건(소액결제 위주)이며, 사업이 진행되는 도시의 수는 현재의 5개에서 곧 14개로 늘어날 예정이다.

상술한 사업 현황을 살펴보면 RBI는 현재 CBDC 시범사업에 신중하고 점진적인 접근법을 채택해 소매 부문에서의 디지털화폐 사용이 가져오는 영향과 리스크를 파악하는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맥락 아래 본고는 인도에서 CBDC가 도입된 배경과 해당 분야 시범사업의 진전 동향을 살펴보고, 실제 경험자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CBDC의 전면적 도입 가능성에 대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

2. CBDC의 도입 배경 및 시범사업 진전 동향
국제결제은행(BIS,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이 2021년에 전 세계 중앙은행을 대상으로 수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은행 중 86%가 CBDC의 잠재력에 관한 연구를 적극적으로 진행 중이고, 60%는 관련 기술을 시험하고 있으며, 14%는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단계에 도달해 있다. 이처럼 CBDC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증대된 배경에는 ▲지폐 사용률 감소 ▲전자·모바일 결제 증가 ▲암호화폐 등 민간 가상화폐 사용 빈도 증가 및 이에 따른 각종 부작용 발생 등이 있다. 다만 인도는 전반적인 디지털 결제 빈도 증가에도 불구하고 아직 현금 선호 현상이 지속된다는 특징이 있으며, 시중에 풀린 총유동성(M3)이 지난 수십 년간 감소했음에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통화량은 여전히 많은 편이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CBDC 도입의 기본 목적은 지금까지 충분히 충족되지 못했거나 유해성 민간 가상화폐의 점유율이 높았던 디지털화폐 분야의 공공 수요를 충당하는 것이다. 특히 인도에서는 CBDC가 일반 통화라기보다는 투기용 자산으로 비화한 민간 가상화폐의 사용 빈도 증가 문제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현재 민간 가상화폐는 핀테크 및 블록체인 기술 분야의 성장에 힘입어 활동 저변을 넓혀가고 있는데, 간디(Gandhi, 2017)는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블록체인 기술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블록체인은 프로그래밍 여부에 따라 금융거래는 물론 경제적 가치를 지닌 모든 대상을 객관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일종의 디지털 거래장부이며, 특정 주체 간의 거래를 효율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영구적인 방식으로 기록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탈중앙화된 수단이기도 하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등장한 혁신적 상품에는 세계의 많은 이들을 흥분에 빠뜨린 비트코인(Bitcoin)이 있는데, 비트코인이 대중의 상상력과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가치를 높여가는 과정을 지켜본 사회 일각에서는 전통적 통화 체계가 곧 종언을 고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한편 RBI는 인도에 CBDC를 도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두 가지의 순효과를 제시한다. 첫째, CBDC를 이용하면 별도 계좌를 개설하지 않고도 인도가 주도하는 통합결제 인터페이스(UPI, Unified Payments Interface)를 활용할 수 있어 거래 리스크가 줄어든다. 둘째, CBDC는 결제 체계의 보편화를 촉진해 결제의 신속성을 제고하고 거래 비용의 절감을 돕는다.

위에서 언급한 UPI는 인도가 CBDC 시범사업 이전에 도입한 디지털 결제수단이다. RBI의 월별 결제체계 지표에 따르면3) 2022년 12월의 UPI 결제건수와 결제금액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71%와 55% 증가했고, 여기에서 소매 부문의 디지털 결제 빈도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경제적 봉쇄 정책 시행과 완화를 차례로 거치며 꾸준히 증가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인도 금융결제원(NPCI, National Payment Corporation of India)4)의 주도로 시행된 UPI에 가입한 은행의 수는 2023년 1월 기준으로 385개이고, 약 70개의 모바일 앱이 UPI 결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UPI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결제가 이미 상당한 성장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CBDC의 추가 도입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인가? 가장 대표적 사례로는 현금 대체 가능성을 들 수 있다. 인도에서 아직 현금을 결제수단으로 선호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중시하는 결제 과정의 익명성과 프라이버시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하며 디지털 결제를 꺼리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만약 CBDC를 사용한 때도 익명성이 보장된다면 디지털 결제가 현금 사용을 상당 부분 대체하면서 지폐 인쇄·보관·배포 등 현금 유통 절차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RBI의 핀테크 담당 부서에서는 시범사업 개시 직전인 2022년 11월에 CBDC의 도입 배경과 거시정책적·법적 함의를 주제로 한 개념 설명서를 공개했는데, 이 중 도입 배경에 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RBI의 접근법은 지폐와 최대한의 유사성을 지닌 디지털 루피를 만들어낼 것, 그리고 디지털 루피 도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관리할 것이라는 두 가지 목표에 기반한다…(중략)…디지털 루피 개발 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한 요소는 ▲기반 기술 및 설계 원칙 ▲신규 화폐의 용도 ▲도입 방식 등이다…(중략)…인도가 CBDC 도입을 통해 기대하는 핵심 성과에는 ▲현금 관리에 수반되는 제반 비용 절감 ▲금융 포용성 강화 ▲대금지급 체계의 회복탄력성, 효율성, 혁신성 제고 ▲결제 체계의 효율성 향상 ▲국제 거래대금 지불 분야의 혁신 촉진 ▲동반 리스크 없이도 민간 가상화폐의 용도를 대체하는 신규 수단 제공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CBDC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하는 사항으로는 ▲도매용 혹은 소매용 용도 구분 ▲직접형, 간접형, 하이브리드형 모델의 선택적 도입 ▲토큰형(token-based) 혹은 계좌형(account-based) 형태 중 택일 ▲금리 적용 여부 선택 ▲익명성 수준 결정이 있다. 이 중 형태와 관련해 RBI는 2020년 10월에 설립된 내부 실무그룹이 권고한 바에 따라 도매 부문에는 계좌형을, 소매 분야에는 토큰형을 도입하는 맞춤형 접근법을 검토해 왔다. 특히 최근 개시된 시범사업에 사용되는 소매용 e-루피는 법정통화의 성격을 지닌 디지털 토큰으로, 현행 지폐 및 주화와 동일한 단위로 발행된다. 은행에서 발행하는 소매용 e-루피는 시범사업 참여 은행이 제공하는 스마트폰 및 휴대기기 연동형 디지털 지갑을 통해 소비자 간 거래와 소비자-상인 간 거래 모두에 사용할 수 있으며, 매장에 비치된 QR코드로 결제를 진행할 수도 있다.

즉, 소매형 e-루피는 현금과 동일한 신뢰성과 안전성, 신속성을 지닌 대체 화폐의 성격을 지녀 은행 예치금 등 여타 형태의 자산으로 변환도 가능하다. 다만, 금리 적용 대상에서는 제외된다. 또한 소매용 e-루피에는 블록체인 기술도 일부 적용된 것으로 추정되나, 이 점에 관한 상세 정보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3. 인도의 CBDC 실제 활용 여부에 대한 연구 결과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인도의 CBDC 사용자 경험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CBDC의 실제 활용 여부 및 관련 문제를 검토해보기로 한다. 지금까지 RBI 소속 기관과 민간 연구진은 디지털 결제 활용 여부에 영향을 주는 요인에 관한 몇 건의 연구를 수행한 바 있는데, 이 중 RBI가 시행해 2021년 4월 공지문에서 공개한 시범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도 내 일상적 거래에서 돈을 주고받는 주요 수단은 여전히 현금이다.

또한 사로이(Saroy) 등이 수행한 미시 분석 연구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기인한 디지털 결제 빈도 증가가 일시적 현상인지, 혹은 장기적 경향인지를 파악하고자 했다(Saroy et al., 2022)5). 이 연구에서 사용자의 디지털 금융 활용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은 디지털 결제수단에 대한 인식과 접근성인 것으로 나타났고, 은행 및 은행원 서비스와의 인접성도 디지털 포용성(digital inclusion)의 확산을 촉진하는 잠재적 요소로 지목되었다. 아울러 직접보조금 형식의 소득 지원에 생계를 의존하는 이들은 보조금을 수령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디지털 결제 체계로 편입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다음으로 아차르야(Acharya)는 질적 연구를 통해 인도 텔랑가나(Telangana)주에서 디지털 결제 활용 여부를 판가름하는 요인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았다(Acharya, 2022)6). 그 결과 조사 대상자들이 디지털화폐와 현금 중에 무엇을 선호하는지를 결정하는 7대 핵심 요소는 ▲UPI 앱 사용의 수월성과 편리성 ▲녹색 체크표시와 같은 사용자 공인 수단 활용 ▲결제 전 1루피(한화 약 16원) 소액청구를 통한 거래정보 최종 확인 ▲거래 실패 빈도 및 주관적 리스크 인식 ▲소비자 신뢰에 영향을 주는 사기 및 분쟁 해결 사례 ▲노인층의 결제수단 선호도 다변화 수준 ▲일부 소비자에서 발견되는 절대적 현금 의존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상기 연구에 따르면 혁신적 디지털 결제수단에 대한 반응이나 이를 실제 생활에서 활용하는지의 여부도 사용자마다 다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노점상을 운영하는 영세 상인은 현금에 비해 교환성과 사용 편의성에서 우위에 있는 데다가 절도 위험도 적은 UPI 결제를 선호한다. 하지만 노인층을 비롯해 교육수준이 높은 계층의 경우 디지털화폐에 상대적으로 큰 경계심을 지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 배경에는 ▲디지털 결제의 완결성(finality) ▲분쟁 발생 사례 ▲결제 실패 시 적절한 분쟁 해결 수단의 부재 ▲노인층을 겨냥한 사기 사례 빈발과 같은 요인이 존재한다. RBI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2월 기준 인도 국내 결제에서 발생한 사기 피해액수는 15만 4,000루피(한화 약 240만 원) 선이다.

4. 결론 
인도가 시범적으로 도입한 소매용 e-루피의 미래는 실제 사용자가 각자의 경험에 따라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RBI는 현재 시범사업에 참여 중인 사용자 그룹의 경험을 분석해 그 결과를 CBDC의 설계 및 구조 개선에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범사업의 범위가 더욱 많은 은행과 사용자로 확대될수록 CBDC가 어떻게 발행 및 배포되어 소매 용도로 사용되는지에 관해 보다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다만 지금까지 인도 내 디지털 결제 활용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을 분석한 연구는 대부분 설문조사나 양적 연구의 성격을 지니며, 이에 반해 질적 연구 측면은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경향이 발견된다.

아울러 인도가 UPI 도입 과정에서 얻은 교훈 중 하나는 많은 이들이 디지털 결제 활용법을 지인으로부터 배운다는 사실로, 이 학습 경로의 중요성은 정부 기관이 제공하는 설명 자료나 신규 결제수단 보급 캠페인 등에 비해서도 훨씬 높았다. 이 점에 비추어 보면 소매용 e-루피의 활용 여부도 개인 네트워크, 문해율, 리스크 및 프라이버시 인식, 디지털화 유인책 존재유무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으로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금융 포용성 측면을 살펴보면, 원활한 사용을 위해 기초적 수준의 경제력과 디지털 문해율을 필요로 하는 CBDC만으로는 오지 거주민 등 금융 접근성이 이미 크게 떨어지는 이들을 금융권으로 포섭하는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미 금융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이들의 경우에는 CBDC에 보다 빨리 적응해 일상생활에 광범위하게 활용할 여지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 각주
1) 제1기 참여 은행: State Bank of India, ICICI Bank, YES Bank, IDFC First Bank
2) 제2기 참여 은행: Bank of Baroda, Union Bank of India, HDFC Bank, Kotak Mahindra Bank
3) 출처: Payment System Indicators, December 2022, RBI, www.rbi.org.in
4) RBI와 인도은행협회(IBA, Indian Banks’ Association)가 2007년 지급·결제체계법(Payment and Settlement Systems Act) 관련 조항에 의거해 설립한 기관으로, 소매 대금지급·결제 체계 운영에 관한 광범위한 업무를 관장한다.
5) 본 연구가 분석한 ‘가계의 디지털 결제 인식, 수용, 활용 양태 조사(Tracking Digital Payments Awareness, Adoption and Use Behaviour of Households)’라는 제목의 계층화 샘플링 설문조사는 프라이스 연구소(PRICE, People Research on India’s Consumer Economy and Citizen Environment)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수행되었으며, 인도 전역의 5,314개 가계를 대상으로 했다.
6) 2022년에 CBDC 및 금융 포용성을 주제로 매이든랩스(Maiden Labs), MIT 디지털화폐연구구상(Digital Currency Initiative), 화폐·기술·금융포용성(Institute for Money, Technology, and Financial Inclusion)과 협력해 수행된 이 독립 연구 프로젝트는 게이츠재단(Gates Foundation)의 후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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