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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남아시아 민주주의의 후퇴와 거버넌스 위기

인도ㆍ남아시아 일반 신소진 도쿄국제대학 국제전략연구소/국제관계학과 부교수 2023/09/18

역내 국가의 절반 이상이 권위주위에 가까운 남아시아
최근 이코노미스트(Economist Intelligence Unit)에서 발표한 민주주의 지표(Democracy Index)에 따르면, 인도·스리랑카·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하고 남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은 하이브리드 체제(hybrid regime)로 분류된다1). 하이브리드 체제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가 섞인 형태의 정치체제이다. 2021년 기준으로 선거 과정, 시민의 자유와 정치 참여, 정부의 기능 등 몇 가지 영역에 대한 평가 내용을 바탕으로 2022년 발표된 해당 자료에 따르면, <표 1>에서와 같이 인도와 스리랑카는 완전한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다소 결함이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이고 아프가니스탄은 권위주의(authoritarian) 국가이다.

남아시아 국가들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이들 국가에서 민주주의란 어떤 의미이고, 언제, 어떠한 과정으로 민주화를 이루었으며,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어떻게 이행되어 왔는가?

본 논고에서는 남아시아의 여덟 개 국가들—네팔, 몰디브, 방글라데시, 부탄, 스리랑카, 아프가니스탄, 인도, 파키스탄—중에서 민주주의 모델에 가장 가까운 두 국가, 인도와 스리랑카가 어떤 시기에 민주화로의 이행 과정을 거쳤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또한, 최근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감염병이 대두되었던 기간에 이들 국가에서 두드러진 민주화의 후퇴 양상을 알아보고, 민주주의가 갖는 함의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민주화 시기는 의견이 분분, 인도 민주주의의 역사와 실상
국가마다 민주화가 시작된 시기는 모두 다르지만, 남아시아 국가들 대부분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들어서야 민주주의로의 체제 이행을 겪는다. 이는,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이 1974년부터 1990년 사이에 권위주의 체제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로 체제 변형을 이룬 남유럽, 동유럽,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을 관찰하고 ‘제 3의 물결’이라고 표현한 시기를 훨씬 지나서다. 

헌팅턴이 제 3의 민주주의 물결을 목격했을 당시, 인도를 제외한 남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는 거리가 멀었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실론자치령으로 독립하여 1972년에 사회민주주의체제로 주권국가를 이룬 스리랑카, 의회민주주의와 군부정권을 반복하고 있던 방글라데시, 1949년 독립 이전부터 전제군주제를 취하고 있던 부탄, 또 다른 전제군주제 국가 네팔, 민주주의와 군부정권체제를 오락가락 하던 파키스탄, 입헌군주제에서 쿠데타를 통해 공화국으로 변신하고 있던 아프가니스탄 모두 정치적으로 계속 혼란을 겪고 있었다. 1970년 당시 인도의 정치체제는 겉으로 보기에 누구 하나 의심할 여지없이 민주주의임에 틀림없었다. 주기적으로 선거를 치르고 독립 이래 집권을 이어가고 있던 인도국민회의(Indian National Congress) 이외의 정당들을 인정하는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 민주주의의 내면은 사실상 일인 지도자 중심으로 권력이 집중된 권위주의에 훨씬 가까웠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특히 1966년 여성으로서 최초로 인도 총리에 오른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가 집권하던 시기가 그러하다. 인디라 간디는 초대 총리였던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의 외동딸로, 인도 정치사(史)상 아버지 다음으로 두 번째로 오랜 기간 집권에 성공한 카리스마가 넘치는 여성 지도자였다. 또한 총리 재직 기간 동안 인도 중앙 정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유력한 다른 정치인들과 암투를 마다하지 않았고, 1984년에는 급기야 펀자브주의 시크교도들이 자치권을 주장하며 반(反)정부 시위를 확대해 나가자 군대를 파견해 이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백명의 시민을 죽게 한 잔혹한 정치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표 1> 남아시아 민주주의 지표 2021

자료: Economist Intelligence Unit (EIU) (2022), “Democracy Index 2021: The China Challenge,” pp.13-16.

헌팅턴은 인디라 간디 집권 하의 1970년대 인도의 정치체제를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 혹은 칠레 아우구스트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집권의 권위주의와 같은 성격의 일인 지도자 중심 권위주의로 구분했다2). 헌팅턴은 덧붙여 인디라 간디는 자유롭고 개방된 선거를 통해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도입하게 되더라도 유권자들이 본인의 정당인 인도국민회의에 투표할 것이라는 착각과 잘못된 계산을 하게 되어 실질적인 민주주의로의 길을 열었다고 설명한다3). 1947년 주권국가로 태어나면서부터 인도가 민주주의와 세속국가 체제를 채택했다고 주장해 온 인도의 많은 정치학자들은 헌팅턴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정당정치의 측면에서 인도가 1980년대 이후에서야 비로소 민주주의를 확고히 하는 심화 단계를 거쳤다는 의견에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4).  

이후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로 국제사회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던 인도는 최근 코로나 19 팬데믹 기간 동안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양상을 보였다.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정부는 가뜩이나 힌두 민족주의를 표방해 인도 전역에 반(反)무슬림 정서를 만연시켜 비민주주의적 행태라고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었는데, 팬데믹이 한창 진행 중일 때에 각 부처의 장관들과는 한 마디 상의 없이 봉쇄령을 내려 14억 국민들의 발을 묶어 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인도 전역에서 갑자기 교통 수단이 모두 멈추었고, 도시에서 일을 하던 이주노동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 천 킬로미터(km)를 걸어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사고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하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굶어 죽기도 했다. 

민주사회주의공화국 불교 국가 스리랑카에 불어 닥친 경제와 거버넌스의 위기 
스리랑카는 1972년 개정된 헌법을 발표하고 국가 칭호를 실론에서 스리랑카로 바꾼다. 사회의 경제적인 불평등이나 착취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종교의 다양성을 보장하지만 여러 종교들 중에서 불교를 수호하는 것을 우선시하기로 헌법에 공포했다. 당시 스리랑카가 채택한 사회주의 모델은 마르크스, 레닌, 트로츠키, 김일성의 사상 중에서 트로츠키의 모델과 가장 흡사했지만, 각기 다른 좌파 정당들이 주장하는 사회주의의 이념이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리랑카의 사회주의는 서구의 다른 사회주의와는 다르게 발전하게 된다. 

당시, 스리랑카자유당(SLFP, Sri Lanka Freedom Party)의 창당자이자 4대 총리였던 솔로몬 반다라나이케(Solomon Bandaranaike)의 배우자였던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Sirimavo Bandaranaike)는 사회주의 이념과 불교를 수호하겠다는 생각으로 1970년대에 산업 전반에서 국유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산업 분야뿐만 아니라, 사유재산 역시 주택이나 토지의 소유권에 상한선을 부과해 국민들이 일정 수준 이상 재산을 소유할 수 없도록 했다. 이 같은 사회주의적 경제정책들은 무산계급이 편안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한 조치였으나, 정작 무산계급은 심각한 가난을 면치 못했다. 게다가 정부의 사회주의적 경향 때문에 외국인 자본가들은 투자를 하려 하지 않았고, 국가의 굵직한 사업들은 구소련이나 중국으로부터 대외원조를 받아야만 할 정도로 경제사정이 좋지 않았다. 

결국 1977년 선거에서 스리랑카자유당을 포함해 사회주의의 이념을 표방하던 정당들은 거의 다 패배했다. 이후 1978년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제로 체제가 바뀐 후, 크고 작은 정당들이 모여 이룬 연합정당단체 두 세 개가 선거에서 엎치락뒤치락 여당과 야당을 번갈아 가며 차지하게 된다. 이후 스리랑카의 혼합주의 경제모델은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시장 개방형으로 바뀌고 어느 정도 경제 개발을 이루는 듯했지만, 1980년대까지의 무역수지는 계속 적자를 유지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정부의 대외원조 의존도는 점점 더 증가하고 독립 이래 고수하던 민주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는 점점 더 실패 쪽으로 기울게 된다.

아슬아슬하던 스리랑카의 경제가 쓰러진 것은 코로나 19 팬데믹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22년 봄이다. 그동안 누적된 국가의 부채와 팬데믹 기간 크게 상승한 물가, 의료시설 부족 사태로 인해 정부는 경제적 압박을 견디지 못했다. 팬데믹 이전부터 여당에서는 정치지도자들 사이에서 불화가 계속되고 있었다. 특히 2018년 시리세나(Sirisena) 대통령이 헌법의 절차를 무시하고 당시 총리직을 수행하던 라닐 위크라마싱하(Ranil Wickremesinghe)의 총리직을 박탈하고 마힌드라 라자팍사(Mahindra Rajapaksa)를 총리직에 앉힌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 사건은 스리랑카 국내에서 시민들의 비난을 샀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며 스리랑카 지도자들이 사회민주주의를 얼마나 허술하게 이행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결국 대법원의 판결로 위크라마싱하는 총리직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스리랑카 정부의 거버넌스 위기는 팬데믹 기간 동안 경제위기를 악화시켰고 결국 2022년 4월 국가부도(sovereign default) 사태를 선언하게 된다.       

남아시아 민주주의의 후퇴가 갖는 함의
비록 결함의 민주주의 체제일지라도 인도와 스리랑카는 국제사회에서 오랫동안 남아시아를 대표하는 민주주의 국가 역할을 해왔다. 이들 민주주의로의 이행 과정이 서구의 민주 국가들의 모델과 다소 차이가 있을지언정  많은 사람들의 땀과, 때로는 피로 일군 민주주의라는 사실은 공통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기 시작한 것은 한 순간이었다. 대부분 정치지도자들이 법과 질서를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려 거버넌스에 위기를 초래한 셈이다. 이들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남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민주적이라고 하는 두 국가의 처지가 이러하니, 다른 국가들의 정치체제와 행태들은 말할 것도 없다.

최근 유엔개발계획(UNDP,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이 발표한 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조사된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에서 인도는 191개국 중 132위, 스리랑카는 73위를 차지했다5). 지역권별로 비교했을 때, 남아시아는 아랍, 동아시아, 유럽과 중앙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다음의 순위를 차지했다. 이는 최저 점수를 기록한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지역보다 아주 조금 나은 수준이다. 민주주의의 보편적인 가치가 인종, 종교, 성별 등의 차별을 배제하고 사회적 다양성을 존중하며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보장하는 것임을 상기해 볼 때, 남아시아 국가들은 더욱 더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복지와 안녕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 각주
1) 미국의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에서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표도 잘 알려져 있으나, 남아시아 국가들의 최근 지표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에서 측정하고 발표한 자료가 비교 연구에 수월한 장점이 있어 본 논고에서는 이를 사용하기로 한다.
2) Samuel P. Hungtington (1991-1992). “How Countries Democratize,” Political Science Quarterly, Winter, Vol.106, No.4, p.582.
3) Ibid., p.588, p.593.
4) 라즈니 코타리 (Rajni Kothari), 마헨드라 프라사드 싱 (M. P. Singh), 조야 하산 (Zoya Hasan) 등의 정치학자들이 인도 정당정치에 관해 많은 연구물을 출판했다.
5) UNDP (2022). “Human Development Report 2021/2022: Uncertain Times, Unsettled Lives: Shaping Our Future in a Transforming World,” UNDP: New York. Pp.3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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