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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정보

[역사] 거주의 한계와 초월 -고대 이집트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삶과 신앙

이집트 국내연구자료 학술논문 박정수 신약논단 발간일 : 2017-09-30 등록일 : 2018-05-25 원문링크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 시대에 일어난 유다인들의 유배와 귀환은 고대 세계의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특이한 것이라면 민족의 역사와 문화 회복 이 모국 본토가 아니라 유배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이 회복 운동 은 본토에서 성공을 거두고 다시금 모든 디아스포라에 영향을 주었다. 이 스라엘 회복은 귀환공동체의 엘리트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터를 놓았고, 그 위에 바로 고대 유대교가 세워졌다. 그들은 율법의 백성이라는 정체성 과 성전공동체라는 종교적 자치형태를 수립했고, 이러한 형태는 이집트의 엘레판티네 유대인 공동체의 정체성과 성전재건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 다. 그 증거로 P. Cowley 21번과 30번을 검토할 수 있다. 하지만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추진한 이상주의적 율법 준수는 본토는 물론 디아스포라 유대 인 성전공동체가 사회문화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투쟁하여 주변으 로부터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기원전 200년경부터 시리아가 팔레스 타인을 지배하고 그 후 마카베오 혁명으로 유대성전국가가 수립되면서 디 아스포라 성전공동체의 운명은 급격히 본토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요동쳤다. 그에 따라 이집트의 유대인들은 이집트인들과 문화적 갈등을 경험해 야 했다. 이런 문화적 동화와 저항의 파고를 넘나들며 그들이 성전공동체 와 율법의 백성이라는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했던 원천에 고대 유대교의 이스라엘 회복의 신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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