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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베네수엘라 위기: 세계 최악의 초인플레이션

베네수엘라 Pedro Romero Alemán Universidad Dan Francisco de Quito Director of Master in Economics 2021/10/06

You may download English ver. of the original article(unedited) on top.


서론
1998년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당선된 우고 차베스(Hugo Chávez)는 2013년 사망할 때까지 권좌에 머물렀고, 그가 주도한 볼리바르 혁명(Bolivarian Revolution)의 기치는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가 현재까지 이어받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간하는 세계경제현황(World Economic Outlook)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2013년에 40.7%를 기록한 이래 더욱 가파르게 상승하여 2018년에는 평균 6만 5,000%라는 경이적 수치를 보였고, 동년 초일부터 말일까지의 물가상승률은 13만%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경제학자인 스티브 행키(Steve Hanke)는 2016년 베네수엘라를 세계 초인플레이션 국가 목록에 포함시켰는데, 당시 베네수엘라의 월간 물가상승률은 221%를 기록하였으며, 이는 물가가 18일마다 두배로 상승한 격이다(Hanke and Bushnell, 2016). 현재 베네수엘라는 전쟁이라는 이벤트 요인을 전혀 겪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사 최악의 초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민들이 상품 및 서비스의 부족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기업 활동에도 상당한 제약이 가해지고 있다.

현재 나타나는 상품 및 서비스 부족 현상의 원인은 통제 불능에 빠진 대규모 화폐 정책, 각종 상품에 대한 가격 통제, 그리고 차베스 정권 시절부터 시작된 사적 투자금 및 재산의 국유화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제 정책이 불러온 결과는 국민들의 국외 대탈출 물결로, 많은 이들이 걸어서 혹은 보트를 타고 나라를 떠나는 광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외 거주/노동자의 송금을 통해 최근 상황이 다소 나아지기는 했지만, 코로나19 사태의 확산으로 인해 이와 같은 방식의 자금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 현황
인플레이션이란 특정 국가 혹은 지역 내에서 일정 기간동안 측정된 물가의 큰 상승을 의미하며, 여기에서의 물가는 해당 국가/지역에서 주로 거래되는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한편 초인플레이션이란 월간 물가상승률이 50% 이상인 경우를 가리킨다(Cagan 1956). 물가상승률은 각국마다, 그리고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나는데, 오늘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는 연간 물가상승률이 20% 미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1800년대 이래 역사적으로 초인플레이션을 겪은 국가는 총 57개국으로, 베네수엘라는 그중 최근의 사례에 포함된다(Hanke and Bushnell, 2016).

<그림 1>은 베네수엘라의 연말 기준 연간 물가상승률이 1980년부터 2021년까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보여준다. 여기에서 특히 2018년 물가상승률이 13만%를 넘은 경이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후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최근까지도 그 수치가 5,000%를 상회한다. 그림에는 라틴아메리카 전체 및 카리브 지역의 연간 물가상승률도 포함(갈색 선)되어 있지만(2000년 이전 300%를 기록한 이래 꾸준히 20% 이하를 유지 중), 베네수엘라의 압도적 수치에 가려져 거의 눈치챌 수조차 없다.

<그림 1> 베네수엘라 및 라틴아메리카·카리브 지역 국가의 연말 기준 연간 물가 상승률
* 자료: IMF 세계 경제 데이터베이스



베네수엘라의 초인플레이션 발생 원인 및 정부의 방지 대책
물가의 급격한 상승, 즉 인플레이션은 상품 및 서비스의 생산량 증가폭이 낮거나 정체된 데 비해 단기간 내 많은 양의 화폐가 발행될 때 발생하며, 그 정도가 매우 클 경우 상기한 기준에 따라 초인플레이션이라 칭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중앙은행이 독점적 통화 발권의 권리를 지니며, 베네수엘라에서는 베네수엘라 중앙은행(Banco Central de Venezuela)이 본 업무를 담당한다. 베네수엘라와 같은 나라에서 통화 발권량이 통제를 넘어서는 경우 그 원인은 재정적 압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초인플레이션을 방지하거나 그 발생 사실을 숨기기 위한 정책을 다수 시행해왔지만, 현재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 지는 못했다. 일례로 차베스 대통령은 2008년 1월, 단위조정을 거쳐 기존 볼리바르권의 1,000배 가치를 지니는 볼리바르 푸에르테(Bs.F, Bolívar Fuerte)를 발행했으며, 이로부터 10년 후인 2018년 마두로 대통령은 Bs.F 10만 배 가치의 볼리바르 소베라노(Bs.S, Bolívar Soberano)를 새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폐가치의 하락은 계속되어 2021년 3월 기준 100만 Bs.S의 달러 환산 가치는 52센트(한화 약 614원)에 지나지 않는다.

공공 정책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화폐의 평가절하가 계속되면서 물가는 멈출 수 없이 올라갔으며, 이에 따라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전반적 구매력이 추락했음은 물론 저소득층이 특히 큰 피해를 입었다. 2012년 초 국내 최저임금은 달러로 환산했을 때 월간 360달러(한화 약 42만 원)였지만, 2015년에는 31달러(한화 약 3만 7,000원), 그리고 2019년에는 2달러(한화 약 2,400원)로 급락했다. 이와 더불어 정부가 실시한 가격 통제 및 사유재산 국유화로 인해 식품 및 화장지 등 생필품을 비롯한 많은 상품의 공급이 부족해지는 사태도 일어났다. 즉, 정부지출을 위해 돈을 찍어내면서 화폐가치가 절하되어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시행한 가격 통제 및 임금 인상 조치가 식품 및 기타 생필품 공급의 부족을 불러온 것이다. 국내외 분쟁이라는 위협이 전혀 없었음에도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는 점이 베네수엘라의 특수한 상황을 말해준다.

<그림 2> 베네수엘라 볼리바르화의 가치
* 자료: https://www.statista.com/chart/15186/price-of-basic-items-in-venezuela-and-equivalent-in-dollars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악영향
2018년 8월 말, 정부는 Bs.F의 액면가를 20분의 1로 줄이고 그 10만 배 가치를 지니는 Bs.S를 도입했으며, 이 조치로 인해 국내 화폐의 구매력은 절반으로 떨어졌다. 그림 2는 주요 생필품의 Bs.F 기준 가격 및 달러 환산치를 보여주는데, 그 내용을 보면 Bs.F 화폐가 사실상 무가치해졌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소비자들은 일상적 거래에서 소량의 물품을 사기 위해 돈으로 가득 찬 보따리를 여러 개 들고 다녀야 했다. 이러한 상황이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강요하는 거래비용, 그리고 이 모든 돈을 보관할 장소를 구하고 은행까지 들고 가야하는 어려움을 생각해보면, 차라리 장사를 접고 가게 문을 닫은 많은 점주들의 행동도 이해가 될 것이다. 일반적 상황에서는 상대적 가격이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합리적 의사 결정을 가능케 하지만,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초인플레이션이 초래될 경우 이러한 기제가
작동하지 않아 통상적인 경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없다. 또한, <그림 2>를 보면 국민들이 닭고기나 소고기, 화장지를 사는데 지불하는 수백 만 단위의 자국 화폐에 대한 달러 환산 가치는 미미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더해 당시 월간 임금도 30달러(한화 약 3만 5,000원)에 미치지 못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더욱 떨어져 2018년 말에는 10달러(한화 약 1만 2,000원)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베네수엘라의 초인플레이션이 불러온 크나큰 악영향 중 또다른 하나는 국내 인구 유출로, 지금 떠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국으로 다시 돌아오거나 적어도 이 곳에서 생업에 종사할 의사가 전혀 없다. UN 난민 고등판무관실(UNHCR,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12월 기준 국외 거주민 중 난민으로 분류된 베네수엘라 국민은 총 480만 명으로, 이들 중 대부분이 라틴아메리카 및 미국에 살고 있다(UNHCR 2019). 하지만 이렇게 많은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자국을 탈출하는 과정에는 많은 위험이 도사린다. 예를 들어 가난한 이들이 도보로 국경을 건너 콜롬비아와 에콰도르를 거쳐 노동자 수요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페루 및 칠레로 향하고 있는데, 다양한 연령층의 자녀와 임산부가 포함된 이민자들의 행렬이 도보로 고속도로를 건너 야외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다양한 제약사항과 악조건에 시달리고 있다.

베네수엘라가 이러한 위기를 겪는 와중이던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쳤고, 이에 따라 국외에 거주하던 이들 중 일부가 다시 조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도보 이민의 악조건에 다시 한번 노출되었다. 게다가 팬데믹으로 인해 국경이 폐쇄된 상황이기에 나라를 지날 때마다 강을 건너거나 현지 브로커들에 돈을 쥐어주고 비밀 통로를 이용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또한 국외 가족 및 친지들로부터의 송금액에 의존하던 국내 거주민들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활동의 축소로 송금액이 줄면서 더욱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전 세계에서 원유 매장량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베네수엘라이지만 미국의 경제제재로 원유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7년 동안 극심한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덮치면서 베네수엘라 경제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 촉구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베네수엘라 당국은 2021년 8월 화폐 단위를 100만 대 1로 축소하는 이른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을 추진했다. 새로 발행할 화폐는 2021년 10월 1일부터 유통하며, 화폐 이름은 볼리바르 소베라노(Bolivar Soverign)에서 볼리바르 디히탈(Bolivar Digital)로 변경된다.

미래 전망과 함의
베네수엘라가 겪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인도주의적 위기는 극심한 상황에 놓여 있으며, 이는 지난 40년간 서방권의 역사에서 내전이나 국가간 군사분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가장 심각한 위기이다.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마두로 대통령은 자국민에 대한 탄압을 일삼고 있기에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국제 공조가 필수적이다. 현 정부는 보다 건전한 경제 정책이나 자유롭고 투명한 선거 시행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정권 연장에만 안간힘을 쏟고 있다.

정부가 국내 치안유지 능력을 상실하면서 국제 무장단체들이 베네수엘라 내 활동 영역을 넓혀가며 안보 위협을 야기하고 있으며, 이러한 단체에는 지난날 무장을 해제당한 콜롬비아 혁명군(FARC, Fuerzas Armadas Revolucionarias de Colombia) 조직원 등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은 역내 평화를 위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모든 나라들이 힘을 합쳐 베네수엘라의 위기 극복을 지원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시위대가 휴대폰으로 촬영한 자료에서 볼 수 있듯 현 정부는 자국민을 탄압하고 기본적 인권을 유린하며, 지금까지 잘못되었음이 여러 번 밝혀진 사회주의적 이념에 기반한 공공 정책을 강행하고 있어 국민들이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차베스 정권 시절이 지금보다 나아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당시가 고유가 호황기였기 때문으로, 전 차베스 정부와 현 마두로 정부 모두 잘못된 이념 및 이에 기반한 공공 정책을 채택해왔다는 점은 똑같다. 하지만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로서 석유 수출을 통해 벌어들이던 돈이 급격히 줄어든 현재, 이전까지의 잘못된 정책에 따른 역효과가 마두로 정권 하에서 보다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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