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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보스니아 전범 믈라디치 종신형 최종 선고를 통해 본 세르비아 극우 민족주의

세르비아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대학 교수 2021/07/29

믈라디치 종신형 최종선고,내용과 국제사회 반응
현지시간으로 2021년 6월 8일, 1990년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 Bosna i Hercegovina, 이하 ‘보스니아’로 약칭)에서 학살을 주도했던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총사령관 라트코 믈라디치(Ratko Mladić, 1942~ )가 헤이그 소재 UN산하 구(舊)유고슬라비아/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C,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잔여업무기구(IRMCT, International Residual Mechanism for Criminal Tribunals) 최종심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믈라디치에게 부여된 범죄혐의는 1990년대 구(舊)유고연방 해체 과정에서 일어난 보스니아 전쟁(1992. 03~1995. 10) 당시 무슬림계 8,000여 명을 죽인 ‘스레브레니짜(Srebrenica) 학살(1995. 07)’을 비롯해 인종청소와 집단학살, 인권유린, 전쟁범죄 등 11개 항목이 주어졌다. 2017년 믈라디치에게 종신형을 선고한 하급심 판결에 대해 최종심 재판관들은 재판관 4대 1로 결정을 그대로 유지했다. IRMCT의 얌베(Prisca Matimba Nyambe) 재판장이 믈라디치 항소를 기각하고 종신형을 확정짓자, 믈라디치는 잠시 눈을 감고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1). ‘보스니아의 도살자(Butcher of Bosnia)’란 별칭을 지닌 믈라디치의 최종 판결로 유고연방 해체 과정에서 벌어진 집단학살과 전쟁범죄 등에 관한 국제사법 절차는 모두 마무리됐다. 믈라디치는 2006년 3월 전범 재판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슬로보단 밀로쉐비치(Slobodan Milošević, 1941~2006. 재임 1989. 05~ 2000. 10) 전(前) 유고 대통령 및 전쟁 당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스르프스카 공화국 Republika Srpska) 대통령으로 2019년 판결이후 종신형 복역 중인 라도반 카라쥐치(Radovan Karadžić, 1945~ , 재임 1992. 04-1996. 07)와 함께 발칸 분쟁의 집단학살들을 주도한 전범 3인방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다.
    
보스니아 전쟁 종결 이후 16년간 도피 생활하던 믈라디치를 2011년 생포 기소한 세르게 브람머츠(Serge Brammertz) 검사는 “믈라디치는 현대사의 가장 악명 높은 전범 중 하나로 전쟁범죄와 증오, 인간의 고통을 상징한다”고 언급하며, “무엇보다도 그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번 최종 판결은 피해자들에게 정의가 실현되는 중요한 순간”이라고 그 의미를 평가했다. 실제 판결 과정을 생중계로 지켜 본 상당수 피해자들은 “(국제사회의) 정의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적 판결”이라 평가하며, “이번 판결이 보스니아계든 세르비아계든 자식을 잃은 고통을 겪은 모든 어머니들의 승리”라는 점을 강조 했다. 

인권 수호와 전쟁 범죄 단죄라는 측면에서 국제 사회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최악의 국제 범죄를 드디어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는 영국 외무장관 도미닉 랍(Dominic Raab)의 평가와 함께, 미국의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 또한 “이 역사적인 판결은 끔찍한 전쟁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반드시 책임을 진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언급하며, “미래에 이 같은 잔학 행위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의) 공동 결의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미첼 바첼레트(Michelle Bachelet) UN 인권위원장 또한 “이번 판결을 통해 믈라디치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국제사회가)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책임을 확실히 지우겠다는 국제 사법제도의 결의를 다진 것”이라며 그 의미를 평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EU 외교, 안보 고위대표인 조셉 보렐(Josep Borrell)도 성명에서 이날 최종 판결은 “유럽의 최근 역사에서 집단학살 등 전쟁범죄 관련한 가장 중요한 재판을 끝마친 것”이라 평가하는 등 국제 사회는 믈라디치의 최종 판결을 크게 환영하였다. 


믈라디치, 세르비아에선 민족의 영웅?
하지만, 세르비아 민족의 생각과 반응은 국제사회의 단죄 의지와 사뭇 다르다. 이번 판결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다음과 같은 분석처럼  세르비아 일반 대중들은 자민족 전범을 향한 국제사회의 단죄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실제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는 이번 재판 결과가 시사하는 의미에 대해 최근 극우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진행 중인 세르비아 역사 재해석 시도에 대해 심각한 타격을 준 것이라 평가하고 있다. 사설에서 신문은 “세르비아의 일부 극우 민족주의 단체들이 (발칸 분쟁에서의) 학살 책임을 부인하고, 분쟁의 역사를 다시 쓰려고 하는 상황 속에 이번 판결이 나왔다”는 말과 함께 “(현재 세르비아 곳곳에선) 유죄판결을 받은 전범들이 영웅으로 칭송받고 심지어 믈라디치와 카라쥐치의 포스터가 공공장소에 등장하기도 한다”고 전했다2). 이러한 인식은 세르비아 전범들의 재판장에서의 답변과 인터뷰 인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제사회에 기소된 세르비아 전범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자신들의 마을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였으며, (역사적 경험상) 만약 (타민족과 타 종교집단에 대한) 인종청소를 하지 않았을 경우 그 대가로 자신들이 그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는 점을 주장하며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믈라디치는 발칸 분쟁 전범들의 재판을 다룬 구(舊)유고 국제형사재판소(ICTY, 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the former Yugoslavia)를 두고 ‘악마의 법정’이라 비난하며 그 정당성을 부인해 왔다. 실제 그는 1994년 뉴욕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가 침략자인가. 베트남, 캄보디아 또는 포클랜드를 침략했는가. 아니면 소말리아나 걸프전에 뛰어들었는가. 아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가정과 국민을 지켰을 뿐이다”는 말로 항변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ICTY가 믈라디치를 기소하자 그는 “베트남전에서 양민을 학살한 미국 장군은 왜 기소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런 전범들의 주장과 인식은 그대로 받아들여져 세르비아 민족들 사이에 이들은 ‘민족의 영웅(Narodni heroj)’으로 추앙되고 있다. 2009년 진행된 ICTY 측의 세르비아 주민 여론조사에 따르더라도 당시 도피중이던 믈라디치를 국제사법당국에 넘겨야 한다는 응답자는 34%에 불과했으며, 78%는 절대 넘기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전체 응답자 중 40%는 실제 그를 영웅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오늘날 베오그라드의 대표 관광명소인 칼레메그단(Kalemegdan)을 비롯해 세르비아의 수많은 관광지와 공공장소에서 세르비아 전범들의 얼굴과 극우 문장들을 새긴 대형 수건 등 각종 기념품들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점은 이를 반증하는 거라 할 수 있다. 
   
이번 판결에 대한 현 세르비아 극우 민족주의자들과 정치가들 반응 또한 이러한 인식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전 보스니아 스르프스카 공화국 대통령(2010. 11~ 2018. 11)이자, 최근 보스니아 연방 의장 대통령을 역임한 밀로라드 도디크(Milorad Dodik, 1959~ )는 과거 ICTY 판결에 대해 “판결이 무엇이든 믈라디치 그는 세르비아인들에겐 전설로 남아 있다”는 말과 함께 “그는 군인으로서의 직업적 능력과 인간적 능력을 쏟아 세르비아 민족과 그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책무를 다한 것이다”라고 평가하였다. 도디크는 2010년 7월 열린 ‘스레브레니짜 학살 15주년’ 기념 당시, 이 지역에서 대량 학살이 일어난 것은 인정하지만 숫자가 너무 부풀려져 있으며, 동부 보스니아 지역에서 자행된 세르비아계 민간인을 향한 무슬림과 크로아티아계의 대량 학살 또한 동등하게 조사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스레브레니짜에 매장된 사람 중 상당수는 전투 중 사망한 것으로 국제사회가 이 지역 학살을 ‘제노사이드(Genocide, 대량 학살)’로 규정하려는 것은 무리라며 강력 반발하기도 했다. 세르비아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스레브레니짜 매장터 발굴과 매장된 시체들의 신원 파악이 20년 넘게 장기간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세르비아인들은 서구 진영이 이 사건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3). 더불어, 그는 이번 믈라디치를 향한 최종 판결 또한 국제사회가 여전히 ‘세르비아 민족을 악마화’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 것이라 비판하며, 이러한 ‘선택적 정의’는 결과적으로 보스니아 내 각 민족 계파 간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라고 항의하였다. 

세르비아 극우 민족주의 기원, (역사적) 피해의식에 따른 혐오?
사전적 의미로 극우 민족주의(Far right nationalism)는 ‘정치적 억압과 폭력, 민족, 종교 집단에 대한 강제 동화, 인종 청소 및 대량 학살 등으로 표출되는 여러 행위를 촉발하며, 이를 수행하기 위한 정당 설립 등 정치적 활동 표출의 중요한 행위’라 할 수 있다. 더불어 극우 세력들의 극우 민족주의 표출 정당성에 대해선 ‘통상 타 민족에 대한 종교, 문화, 역사적 우월 심리와 상대적 피해 의식, 이로 인한 혐오와 배타성, 국가 이익과 자민족의 이익을 동일시 여기는 인식 공유, 그리고 이를 정치적으로 합리화 시키는 권위주의 체제 등’의 부여 근거를 제시한다. 앞서 확인했던 세르비아 극우 민족주의자들과 그 지도자들의 국제사회 인식에 반한 반응들은 그 동안 이 지역에서 극우 민족주의가 성장할 수 있던 중요한 동력이 되어왔다. 그리고 그 기원에는 동유럽 극우 민족주의의 중요 요소인 ‘(역사적) 피해의식에 따른 혐오’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혐오는 좀 더 세분화되어 극우 민족주의 표출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자 뿌리라 할 수 있는 ‘(타 민족과 종교, 문화에 대한) 배타적 혐오’와‘(기존 지배 질서에 대한) 저항적 혐오’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세르비아 등 동유럽에서의 극우 민족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립된 사회주의 체제로 인해 한동안 잠재되어 왔다. 극우 민족주의의 중요한 뿌리인 타 종교와 타 문화에 대한 혐오는 체제 내 제거되어야 할 아편으로 취급되어 왔고, 이 점은 동유럽 내 극우 민족주의가 한동안 깊숙이 가라앉게 된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사회주의 체제 전환(Socialist System Transition)은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키게 된다. 체제 전환 동안 발생한 심각한 경제 위기속에 뿌리 깊은 민족, 문화, 종교간 이질성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혼란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것들은 수면 아래 동유럽 극우 민족주의를 자극해가며 뿌리깊은 종교적 선민의식과의 결합을 통해 그들의 극단적 행위들을 정당화하는 중요 배경을 제공하게 된다. 그중 발칸반도에 자리한 사회주의 유고 연방내 민족들은 극우 민족주의가 대두된 가장 대표 지역으로, 1990년대 약 10년 동안 이어진 그 고통을 수반해야 했다. 그 배경에는 지난 2,000여년에 걸친 역사적 연결 고리와 함께 보스니아를 경계로 형성된 복잡한 ‘(이슬람, 정교, 가톨릭 간) 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가 자리한다. 특히, 15세기 이래로 약 400년 넘게 이어진 오스만 터키의 지배속에 지주 계층이 된 보스니아 무슬림은 정교도 세르비아 농노들을 착취하고 여러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세르비아 민족들의 ‘역사적 피해 의식’을 고취시켰으며, (특히 보스니아 무슬림을 향한) 타민족과 타 문화, 타 종교집단에 대한 혐오를 불러왔다. 다양한 민족 구성과 종교, 문화적 집단들로 구성된 이 지역의 극우 민족주의 표출은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종교적 쇼비니즘(chauvinism)’과 밀접하게 결합되게 된다. 실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지원 속에 크로아티아 우스타샤(Ustaša) 극우 정권은 가톨릭 종교 개종을 이유로 약 70~80여만 명의 세르비아 민족 및 유태인들을 집단 학살하였다. 이것은 유고 전쟁과 보스니아 전쟁 당시 세르비아 극우 민족주의 단체들이 크로아티아 민족을 향한 역사 재보복 속에 인종 청소와 집단 학살의 명분과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 피해의식’에 따른 이런 혐오들은 오늘날 어느 특정 민족과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유럽은 동유럽 국가들로의 EU 확대에 따른 동유럽 이민자 문제와 21세기 역외 난민 유입으로 인해 이미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성장과 눈에 띄는 정치 세력화를 확인하고 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주변 강대국들의 극우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 스스로 극우 민족주의 확대를 경계하고 그 현상에 대한 생각을 되짚어 봐야할 이유이다. 




* 각주
1) 최후 변론에서 믈라디치는 “자신은 (전쟁 상황 속에서)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했을 뿐”이라 항변했으나, 항소심에 이어 최종심에서도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재판관 5명 중 한 명만 일부 항목에 있어 믈라디치 주장을 인정했으나, 그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번 재판에서 검찰은 1992년 4,50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다른 학살 사건까지 유죄판결을 내려달라 항소했지만, 입증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판결문 내용과 결정 배경에 대해선 UN IRMCT (June 8 2021), “Appeal Judgement” . https://www.irmct.org/sites/default/files/case_documents/210608-appeal-judgement-JUD285R0000638396-mladic-13-56-en.pdf 참조. 
2) New York Times (June 08 2021) “Ratko Mladic Loses Final Appeal in Genocide Conviction”  https://www.nytimes.com/2021/06/08/world/europe/ratko-mladic-trial.html
3) Christopher Bennett (July 31, 2008) “How yugoslavia's destroyers harnessed the media”.  http://www.pbs.org/wgbh/pages/frontline/shows/karadzic/bosnia/medi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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